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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변혁을 향한 외침 –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 그리고 갑오개혁 갑신정변 – 조기 근대화를 향한 개화파의 도전1884년 12월, 조선의 젊은 개화파들은 3일간의 짧은 혁명을 시도한다.이 사건이 바로 갑신정변이다.배경당시 조선은 외적으로 청과 일본, 러시아 등 열강의 각축장이었고,내부적으로는 부패한 양반체제와 낙후된 정치구조로 인해 개혁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었다.개화파는 크게 두 갈래로청의 힘을 빌어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 개화파(김홍집 등)와일본과 손잡고 급진적인 근대화를 주장하는 급진 개화파(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로 나뉘었다.김옥균 등이 주도한 급진 개화파는 일본 공사의 지원을 받아 궁중 쿠데타 형식으로 정변을 일으킨다.그들은 왕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고종을 장악하고,내각을 구성해 개혁 정강 14개조를 발표한다.주요 개혁 내용으로는 문벌의 폐지와 인.. 2025. 7. 3.
조선의 마지막 개혁가? –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그 한계 붕괴된 왕권의 회복 – 흥선대원군의 중앙 집권 개혁19세기 후반의 조선은 나라 안밖으로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왕권은 이미 무력화되고, 세도정치가 극에 이르러 권력을 독점한 외척 가문들에 의해 국정은 무너져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철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고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게 되고,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섭정으로 국정을 장악하게 된다.흥선대원군은 취임 직후, 당시 조선의 정치적 혼란과 무너진 조정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 집권 개혁을 추진했다.대표적인 개혁 조치로는세도 정치 타파를 통한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세도 가문 축출서원 철폐를 통한 전국 600여 개 서원 중 47개만 남기고 정리하였으며성리학 중심의 붕당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과거제 정비를 통한 매관매직 방지.. 2025. 7. 2.
몰락하는 왕조, 분노하는 민중 – 세도정치와 민란의 격동기 세도정치의 시작과 권력 독점 – 실종된 왕권조선 후기, 정조가 죽고 난 후 조선의 정치권력은 왕의 손에서 외척 가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이를 일컬어 세도정치라고 부르며, 그 시작은 순조(1800년 즉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린 순조가 즉위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장악했다.이후 헌종(풍양 조씨), 철종(다시 안동 김씨)로 이어지는 외척 중심의 정치 구조는 약 60여 년 동안 조선 정치를 마비시켰다.세도정치는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왕권의 형식화: 어린 왕의 즉위 → 실권 없는 군주외척 세력의 권력 독점: 벼슬은 혈연과 연줄로 결정관직 매매와 부정부패: 매관매직과 뇌물 정치가 일상화중앙·지방 행정의 붕괴:.. 2025. 7. 1.
굴욕과 결기의 역사 – 병자호란과 북벌 운동, 조선의 자존심을 말하다 병자호란의 발발과 조선의 치욕적인 항복조선 후기, 17세기 초반의 국제정세는 격변기였다.만주 지역에서 등장한 후금(나중의 청나라)은 명나라를 위협하며 점차 세력을 키워갔다.조선은 전통적으로 명나라와 사대 관계를 맺어온 나라로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1627년, 후금은 조선에 대해 정묘호란을 일으켰고, 조선은 형식적 화의를 맺어 위기를 넘겼다.하지만 조선은 이후에도 명에 대한 충절을 유지하며 후금(이후 청)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다.이러한 조선의 태도는 점점 강성해지던 청의 눈에 배신 행위로 비춰졌고, 결국 1636년, 청 태종 홍타이지는 대대적인 병력을 이끌고 병자호란을 일으켰다.조선은 대비하지 못한 채 무방비로 공격을 받았다.청의 기병대는 순식간에 수도 한양까지 진격했고, 인조는 강화.. 2025. 7. 1.
조선을 뒤흔든 전쟁, 임진왜란 – 위기 속에서 피어난 민족의 힘 임진왜란의 발발과 조선의 초기 대응 실패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조선에게 있어 가장 거대한 외적 시련이었다.당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조선을 거쳐 명나라까지 정복하겠다는 ‘정명가도’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조선은 평화에 익숙해져 군사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국방은 허술했고,무기는 낡았으며,군사 훈련은 형식적이었다.무엇보다 정보 수집의 실패와 상황에 대한 인식 부족이 결정적이었다.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한 후, 순식간에 한양까지 진격했다.선조는 개성 → 평양 → 의주까지 피난을 가야 했고, 조선 조정은 혼란에 빠져 붕괴 직전에 이르게 된다.이 시기 조선군의 대응 실패는 군사 체제만의 문제가 아니었.. 2025. 7. 1.
왕과 선비, 권력을 두고 벌인 긴 여정 – 조선의 왕권과 사림의 성장 조선 전기 중앙집권 체제와 왕권 강화조선의 건국 초기는 강력한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를 수립하는 시기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도전은 고려의 부패한 귀족 정치와 불안정한 왕권을 거울 삼아, 중앙집권적이고 유교 이념에 충실한 왕도정치를 목표로 삼았다.특히 태종(이방원) 시기에는 왕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개국공신이나 외척 세력의 권력을 제약하고, 6조직계제를 시행하여 왕이 직접 행정을 주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호패법을 실시하고 인구 파악을 철저히 하며 양전사업을 통해 국토와 인구, 세금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했다.세종은 이러한 기반 위에서 유교적 이상 정치를 펼쳤다. 성리학적 정치 철학을 실현하면서도 관료들과 협치하는 공론 정치를 중시했고, 과학, .. 2025.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