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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왕조, 분노하는 민중 – 세도정치와 민란의 격동기 세도정치의 시작과 권력 독점 – 실종된 왕권조선 후기, 정조가 죽고 난 후 조선의 정치권력은 왕의 손에서 외척 가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이를 일컬어 세도정치라고 부르며, 그 시작은 순조(1800년 즉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린 순조가 즉위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장악했다.이후 헌종(풍양 조씨), 철종(다시 안동 김씨)로 이어지는 외척 중심의 정치 구조는 약 60여 년 동안 조선 정치를 마비시켰다.세도정치는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왕권의 형식화: 어린 왕의 즉위 → 실권 없는 군주외척 세력의 권력 독점: 벼슬은 혈연과 연줄로 결정관직 매매와 부정부패: 매관매직과 뇌물 정치가 일상화중앙·지방 행정의 붕괴:.. 2025. 7. 1.
굴욕과 결기의 역사 – 병자호란과 북벌 운동, 조선의 자존심을 말하다 병자호란의 발발과 조선의 치욕적인 항복조선 후기, 17세기 초반의 국제정세는 격변기였다.만주 지역에서 등장한 후금(나중의 청나라)은 명나라를 위협하며 점차 세력을 키워갔다.조선은 전통적으로 명나라와 사대 관계를 맺어온 나라로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1627년, 후금은 조선에 대해 정묘호란을 일으켰고, 조선은 형식적 화의를 맺어 위기를 넘겼다.하지만 조선은 이후에도 명에 대한 충절을 유지하며 후금(이후 청)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다.이러한 조선의 태도는 점점 강성해지던 청의 눈에 배신 행위로 비춰졌고, 결국 1636년, 청 태종 홍타이지는 대대적인 병력을 이끌고 병자호란을 일으켰다.조선은 대비하지 못한 채 무방비로 공격을 받았다.청의 기병대는 순식간에 수도 한양까지 진격했고, 인조는 강화.. 2025. 7. 1.
조선을 뒤흔든 전쟁, 임진왜란 – 위기 속에서 피어난 민족의 힘 임진왜란의 발발과 조선의 초기 대응 실패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조선에게 있어 가장 거대한 외적 시련이었다.당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조선을 거쳐 명나라까지 정복하겠다는 ‘정명가도’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조선은 평화에 익숙해져 군사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국방은 허술했고,무기는 낡았으며,군사 훈련은 형식적이었다.무엇보다 정보 수집의 실패와 상황에 대한 인식 부족이 결정적이었다.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한 후, 순식간에 한양까지 진격했다.선조는 개성 → 평양 → 의주까지 피난을 가야 했고, 조선 조정은 혼란에 빠져 붕괴 직전에 이르게 된다.이 시기 조선군의 대응 실패는 군사 체제만의 문제가 아니었.. 2025. 7. 1.
왕과 선비, 권력을 두고 벌인 긴 여정 – 조선의 왕권과 사림의 성장 조선 전기 중앙집권 체제와 왕권 강화조선의 건국 초기는 강력한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를 수립하는 시기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도전은 고려의 부패한 귀족 정치와 불안정한 왕권을 거울 삼아, 중앙집권적이고 유교 이념에 충실한 왕도정치를 목표로 삼았다.특히 태종(이방원) 시기에는 왕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개국공신이나 외척 세력의 권력을 제약하고, 6조직계제를 시행하여 왕이 직접 행정을 주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호패법을 실시하고 인구 파악을 철저히 하며 양전사업을 통해 국토와 인구, 세금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했다.세종은 이러한 기반 위에서 유교적 이상 정치를 펼쳤다. 성리학적 정치 철학을 실현하면서도 관료들과 협치하는 공론 정치를 중시했고, 과학, .. 2025. 6. 30.
위대한 르네상스 군주, 세종 – 과학과 문화로 꽃피운 조선의 전성기 백성을 위한 문자, 훈민정음 창제의 의미세종대왕은 조선의 르네상스 군주로, 그의 통치 아래 조선은 과학과 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한글, 훈민정음의 창제다. 1443년에 창제되어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문자 혜택에서 소외된 백성을 위한 진정한 민본주의 실천이었다.당시 조선은 한문을 공용 문자로 사대부분의 백성은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어 법률, 교육, 신앙, 행정 등 사회적 소통에서 소외되었다. 세종은 이러한 현실을 직접 지적하며, “내 백성이 말하고자 하나 문자로 표현하지 못함을 내가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했다.훈민정음은 이처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문자 개혁의 결과물이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단지.. 2025. 6. 29.
유교의 나라, 조선 – 사상으로 세운 나라의 시작 조선의 건국 배경과 유교 국가로의 전환1392년,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의 등장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사상과 사회 구조의 대전환이었다. 조선은 고려의 불교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조선의 건국 배경은 고려 말의 혼란에서 찾을 수 있다. 권문세족의 부패, 왕권의 약화, 민생의 피폐화가 극에 달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 비전이 절실해졌다. 이 과정에서 급진 개혁파인 신진사대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유교적 이상국가를 꿈꾸게 된다.조선 개국의 핵심 인물인 정도전은 유교 이념에 따라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설계했다. 그는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 등을 통해 왕도정치, 민본주의, 사대부 중심 통치, 불교 억제 및 유학.. 2025.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