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당당히 소개글에 적어 놓은 사람이 있다. 일본 도쿄에서 활동 중인 한 남성, ‘렌탈 남자(レンタルなんもしない人)’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사람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직업의 핵심이다.
하지만 단순히 백수의 기행이 아니다. 이 직업은 외로움과 소통 부족, 인간관계의 피로 속에 사는 현대인의 감정에 깊숙이 닿아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 기묘한 직업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진지하게 살펴본다.
렌탈 남자란 무엇인가? — 아무것도 안 하는 직업의 정의
1) 렌탈 남자의 등장 배경
2018년 일본에서 SNS를 통해 탄생한 ‘렌탈 남자’는 원래 이름이 ‘렌타루 난모 시나이 히토(レンタルなんもしない人)’로, 직역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빌려드립니다”이다.
해당 서비스를 시작한 사람은 도쿄 거주 남성 모리모토 쇼지 씨.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서비스 제공자’로 정했다.
2) 정확히 무슨 일을 하나?
그는 말한다.
“밥을 같이 먹을 수는 있지만, 추천도, 대화도, 감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옆에 있어드립니다.”
즉,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한다:
혼자 가기 어색한 장소에 동행 (식당, 카페, 전시회 등)
병원, 공공기관 등 혼자 가기 불안한 공간에 ‘있어주기’
이별 후 감정을 털어놓는 사람 곁에 조용히 앉아 있기
고백이나 고소장 전달 시의 ‘심리적 버팀목’ 역할
논문 발표 전 연습 청중 역할 (실제 피드백은 없음)
그는 돈을 거의 받지 않는다. 교통비, 식비 정도만 부담시키고, “감정노동 없음”을 철칙으로 삼는다.
3) 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을 찾을까?
진심을 털어놓을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사람들
감정을 부담 없이 흘려보내고 싶은 사람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순간의 ‘심리적 동반자’를 찾는 사람들
조언 없이 ‘그냥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이들
렌탈 남자는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가 누군가에겐 커다란 위로와 역할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이룬다 — 활동 방식과 사례
1) 의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주로 트위터 DM이나 웹사이트 폼으로 의뢰
간단한 설명 → 시간·장소 조율 → 요청 내용 확인
철저하게 “요구하지 않기”가 기본
예:
“생일인데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아서 케이크를 함께 먹어줄 사람”
“직장에서 해고당했는데, 말없이 커피숍에 같이 있어줄 사람”
“입원 수속을 밟는 동안 동행해줄 사람”
2) 렌탈 중 지키는 원칙
개입하지 않기
판단하지 않기
동조나 공감도 요구하지 않음
감정 교환이 아닌 ‘존재 자체의 대여’
이는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의도적인 비개입이다.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의 감정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렌탈 남자의 본질이다.
3) 인상적인 사례들
유산 직후 병원에서 울던 여성 곁을 지켜준 사례
자살 시도를 고민하던 이가, 렌탈 남자와 대화 후 삶을 재정비한 사례
결혼식에서 ‘친구 역할’을 요청받아 끝까지 말 없이 서 있었던 경험
대학 입학식에 혼자 가기 싫어 대리 참석한 사례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계속 주고받아야만 관계가 성립하는 건 아니잖아요.”
존재의 가치와 현대사회 — 렌탈 남자가 보여주는 삶의 질문
1) 우리는 왜 ‘말 없이 곁에 있는 사람’을 원할까?
현대인의 관계는 대부분 목적지향적이다.
“상담해줄 사람”
“웃겨줄 사람”
“연애할 사람”
하지만 때로는 아무 역할도 바라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렌탈 남자는 바로 그런 “비기능적 관계”의 상징이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꼭 뭔가 해야만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아무 말 없이, 아무 행위 없이도 위로가 가능하지 않을까?
2) 소비자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심리적 방전, 감정 쓰레기 처리장 같은 역할
“아무 말 없이 나를 수용해준 사람”이라는 해방감
자기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많은 고객은 렌탈 종료 후 연락을 끊는다. 어떤 이들은 끝나자마자 “고맙습니다”도 없이 떠난다. 렌탈 남자는 그마저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3) ‘존재의 대여’가 가진 철학적 메시지
이 직업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다.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깊은 사회적·철학적 메시지가 숨어 있다:
"소유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
"도움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다."
"조용한 동행이 가장 큰 관계일 수도 있다."
그는 “행동이 아닌 존재의 렌탈”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인에게 ‘존재 자체의 의미’를 일깨운다.
결론: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게 전부일 수도 있다
렌탈 남자는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게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합니다.”
기묘한 듯 보이지만, 이는 사람의 존재 방식 중 가장 순수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이 직업은 결국 현대인이 가장 그리워하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조건도, 판단도, 보상도 없는 “그저 곁에 있는 것”.
그것이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진한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