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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먹고산다”— 전문 장례식 울음꾼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by kobs5163 2025. 3. 26.

“눈물로 먹고산다”— 전문 장례식 울음꾼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어떤 문화에서는 조용히 침묵하며 고인을 기리지만, 또 다른 문화에서는 큰 소리로 울고, 통곡하는 것이 곧 예의이자 도리로 여겨진다. 그런 문화 속에서 등장한 독특한 직업이 바로 ‘전문 장례식 울음꾼(Professional Mourner)’이다.

고인을 위한 눈물, 그것이 직업이 되는 세계. 이번 글에서는 이 기묘하고도 감성적인 직업의 세계를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깊이 있게 살펴본다.

 

전문 울음꾼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


1) 울음은 ‘의무’였다
고대 사회에서 장례식은 단순한 이별의 자리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고인의 명예, 가족의 체면, 공동체 내 위계질서까지 드러내는 사회적 의례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충분히 슬퍼 보이는 것”은 유족이 갖춰야 할 중요한 태도로 여겨졌고, 울음은 일종의 의무가 되었다.

 

2) 역사 속의 전문 울음꾼
고대 이집트
‘애도 전문가’를 뜻하는 여인들이 관 앞에서 울며 노래하는 장면이 고대 벽화에 묘사됨

고대 중국
명나라~청나라 시기, 조문객 중 일부가 고용된 여성으로, 특정 복장을 입고 곡을 하며 슬픔을 표현함

한국 조선시대
“곡비(哭婢)”라는 명칭의 여성 울음꾼들이 상여 행렬 앞에서 울음을 선도

고대 로마
장례식에서 관객들의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전문 울음꾼이 있었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일수록 더 많은 울음꾼을 고용

즉, 전문 울음꾼은 단순한 감정 표현자가 아니라, 의례와 체면을 완성하는 퍼포머였다.

 

3) 왜 울음을 ‘빌렸나’?
가족이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 대리 애도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슬픔을 퍼뜨려 고인의 인생을 높이 평가받도록

공동체 전체가 애도의 분위기를 공유하도록 분위기 조성

 

오늘날 전문 울음꾼은 어떻게 활동하는가?


1) 이 직업은 아직도 존재하는가?
놀랍게도 21세기인 지금도 전문 울음꾼은 활동 중이다. 다만 고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존재한다.

활동 국가별 사례
중국 일부 농촌 지역
→ ‘전문 곡예단’처럼 구성된 장례팀이 공연형 곡(哭) 퍼포먼스를 진행
→ 노래, 춤, 통곡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장례식으로 진화

가나,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일부 국가
→ 통곡뿐 아니라, 무용, 퍼레이드, 춤추는 관 운구인까지 포함

대한민국
→ 공식 직업은 아니지만, 장례식장에서 통곡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전문 진행자, 전통 곡소리 대행 서비스가 일부 존재
→ 고령층이 많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울음 시범자 역할을 요청받기도 함

 

2) 전문 울음꾼의 실제 업무
고인의 일대기 파악 및 시나리오 구성

고인의 생애, 유족과의 관계, 애도의 포인트를 정리하여 통곡에 활용

의상 및 음향 준비

일부는 전통 복장을 착용하고, 마이크를 통해 울음을 증폭

의례 순서에 따른 맞춤 곡 시연

영정 앞, 상여 출발 시, 화장 전, 하관 시 등

각 단계별로 울음의 톤과 내용이 달라짐

 

3) 이들은 정말 ‘울 수 있는가?’
그렇다. 많은 울음꾼들은 실제로 눈물과 감정 표현을 ‘연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단지 연기력만이 아니라, 고인을 위한 진정성 있는 표현을 위해 진심을 담아 울기도 한다.

울음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감정 전달의 기술이며, 때로는 치유의 의식이 되기도 한다.

 

감정의 직업화: 윤리와 사회적 시선


1) “진짜 슬프지도 않은데, 울어야 하나요?”
이 질문은 전문 울음꾼이 가장 많이 듣는 고민 중 하나다.

하지만 울음꾼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역할은 단지 ‘슬픔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유족이 슬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감정을 끌어내는 촉매제다.

유족이 슬픔을 억누르지 않게

고인을 더 깊이 기억할 수 있게

애도와 치유가 이루어지는 진정한 장을 만들기 위해

따라서 울음은 진실성 없는 연기가 아니라, 감정의 스위치를 열어주는 의식의 한 방식이다.

 

2) 직업으로서의 장점과 어려움
장점
정서적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이들에게 적합

전통문화와 의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

사회적으로 희귀한 직업으로 관심 받음

단점
감정 노동 강도 매우 높음

심리적 소진 위험 (슬픔에 지속 노출)

가족, 지인들의 편견과 싸워야 함 ("왜 그런 일 해?" 같은 시선)

 

3) 울음꾼의 미래
문화재로서 보존: 일부 지역에서는 곡비 문화를 전통예술로 인정하고 보존 중

감정 케어 전문가로 발전: 죽음 상담사, 웰다잉 플래너 등으로 확장 가능

디지털 울음 서비스?: 장례식 생중계 시대, 온라인 추모관 등과 연계한 ‘사이버 애도 퍼포먼스’로 진화 가능성

 

결론: 울음 너머의 진심


전문 울음꾼은 단지 ‘슬픈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남의 죽음을 대신 슬퍼주는 사람이며, 상실 앞에서 말없이 떨고 있는 이들에게 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이 기묘한 직업은 사실, 우리가 얼마나 감정을 외면하고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슬퍼하고 싶지만 울지 못하는 사람들,

애도를 표현할 방법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울음꾼은 ‘눈물을 꺼내주는 예술가’로 존재한다.

울음도, 감정도, 누군가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직업은 치유의 기술이며, 문화적 의미를 품은 감정의 언어다.